그토록 무더웠던 여름은 처서(處暑)가 지나자 그 기세가 한풀 꺽였다. 서서히 가을의 기운이 느껴지는 시기다. 콧바람이 차가워질 무렵 생각나는 음식이 있다. 전어나 대하 등 가을을 더욱 풍성하게 해 줄 음식이 많은데, 그 중에서 즐겨 먹는 음식은 단연 칼국수다.
칼국수는 사시사철 즐길 수 있는 우리네 서민 음식인데, 날씨가 쌀쌀해질 즈음 더욱 찾게 된다. 어디를 가든 멸치국수로 우린 칼국수는 쉽게 찾아볼 수 있고, 또 왠만한 칼국수 맛집은 모두 수제 칼국수를 고집하는데, 여기에 이 음식점만의 독특한 점이 하나 있다. 바로 닭칼국수가 그것이다.
서울 청량리역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한 ‘혜성칼국수’. 청량리역에서 미주상가를 지나면 붉은 벽돌 건물로 지어진 건물 1층에 위치해 있는데, 오랫동안 장사를 해온 흔적이 곳곳이 베어 있다.
점심 시간인 터라 당연히 손님으로 북적인다. 50대 중년 두 분과 테이블을 합석했다. 메뉴는 달랑 하나다. 칼국수 8,000원. 칼국수치곤 조금 가격이 센 편이다. 테이블에 앉자 식당 아주머니가 뭘로 먹을건지 물어본다. “멸치? 닭?” 망설일 세도 없이 “닭”이라고 하고 기다리면서, 합석한 테이블의 아저씨들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주고받게 되었다.
20년 전까지만 이 근처에서 직장생활을 했는데, 그 당시만 해도 월급이 11,000원. 그때 이 집의 칼국수 가격은 1,000원. 그 당시의 물가를 고려해 봤을 때에도 그렇게 저렴한 편은 아니었던 것이다. 아저씨 왈 “추억이 생각나서 종종 와서 먹는다고 한다.”
세 개의 큰 그릇이 테이블 위로 올라온다. 두 아저씨들도 닭칼국수를 시킨 것이다. 옆에 앉은 아저씨께서 냅킨이며, 물병이며 소소하게 챙겨주셨다. 닭칼국수의 맛을 떠나 우연찮게 다른 일행과 합석해 먹으며 잠깐잠깜 이야기를 나눈 식사 시간이 꽤 즐거웠다.
누군가에게는 추억의 음식일 테고, 누군가에게는 한끼 점심 식사일 것이다. 칼국수라는 게 별로 특별한 음식이 아닌 만큼 사실 큰 기대없이 간 ‘혜성칼국수’. 칼국수에 얽힌 추억의 한 장면이 생겼다. 나중에 또 이곳에 찾는다면 그때의 그 식사 풍경이 떠오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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